몇 년 전부터 시각장애인과 인연을 맺고 이런저런 학습 보조활동을 해왔다. 자격증 취득을 목표로 공부하는 사람에겐 시험문제를 읽어주거나 문제와 정답을 찾기 쉽게 파일 작업을 해주고, 대부분은 교재들을 음성변환기가 인식하도록 규칙에 맞게 텍스트 파일로 옮기는 작업을 했다. 그때마다 보는 것의 소중함을 절감할 수 있었다. 특히 사진이나 표를 말이나 글로 풀어서 설명해야 할 때는 시각장애를 갖고 공부하는 분들이 새삼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던 중 에벤엘선교회 간사님의 소개로 ○○씨를 만나게 되었다.
○○씨는 그동안 내가 학습 보조를 해왔던 중도실명하신 분들과 달리 태어날 때부터 앞을 못 보는 분이었다. 색이나 모양에 대한 아무런 경험이 없는 상태, 그 막연한 토대 위에 쌓였을 학습의 결과물들, 그리고 그의 학창시절……솔직히 상상이 잘 안 되었다. 그래서인지 ○○씨는 글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다소 어려움을 겪는 듯했다. 내가 성장기에 무심히 보아 넘겼던 온갖 사물들이 ○○씨의 머리 속에는 대부분 막연하게 단어로만 남아있으니 정확한 의미가 떠오를 리 없는 것이다.
우선 다양한 방면의 짧은글을 같이 읽고, 가능하면 개념을 확실히 알 수 있게 이해를 돕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씨와 사회, 문화, 역사, 세계 등등을 다룬 신문칼럼을 놓고 이야기 나누며 모르는 단어들을 찾고, 내용에 대해 생각해보며 이런저런 의견을 나눴다. 그러나 아무리 쉬운 단어라도 앞을 보지 못한다면 어려울 수 있는 단어들이 너무 많았다. 개, 고양이, 닭 같은 동물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명칭은 알고 있지만 그 동물들이 네 다리와 두 다리를 가진 차이점으로 나뉠 수 있다는 것이 ○○씨에겐 그냥 눈에 보이는 당연한 일이 아니었으므로. ‘사상누각’이라는 사자성어도 이야기하다가 벽에 막혔다. ‘기초가 약하여 오래가지 못하는 것을 뜻하는 고사성어’라는 사전의 뜻은 쉽게 찾아보고 읽을 수 있지만 모래 위에 지어진 누각, 정자라고 할 때 정자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씨에게 이런저런 개념들을 설명하고, 때론 손짓발짓으로 형상화해가면서 내가 아는 얄팍한 지식을 전해주는 대신 나는 ○○씨로부터 값진 삶의 자세를 배웠다. 눈을 통해 내가 얻는 정보가 얼마나 풍부한 것이었나 하는 값진 깨달음과, 매사를 물방울 떨어지듯 조금씩 꾸준하게, 느리지만 한결같이 소처럼 뚜벅뚜벅 걷는 자세였다. 칼럼을 읽는 틈틈이 짬이 날 때마다 ○○씨는 쉬는 시간에 사자성어를 공부하고, 한글맞춤법을 찾아 읽었다. 잘못 사용되는 맞춤법들과 띄어쓰기 사례들을 정확히 찾아내고, 점자 교정사라는 자신의 목표를 향해 보다 정확하게 글을 읽기 위해 꾸준히 노력한다. 점자를 읽는 ○○씨의 부지런한 손길을 보면서 게으른 내 생활을 자꾸 반성하게 되기도 했다. ~~~~계속
김희선(에벤엘선교회 상담 자원봉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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