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nel ( 2023-04-04 16:17:23 , Hit : 138
 고난 속에서도 행복한 목사

1장 순풍에 돛 단 듯

1. 41년생 한국현대사를 관통하며 살다

나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식 이름인 정길이라는 이름을 썼다. 그러나 호적에는 가문의 돌림자를 따서 신현국으로 올렸고 지금까지 그렇게 불리고 있다. 내가 다섯 살 때 일제에서 해방이 되었고 48년도에 상월국민학교에 들어갔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비극의 6·25 한국전쟁이 벌어졌다. 인민군이 우리 시골에 내려올 때 우리는 산 고개 너머 산골 마을로 피난을 갔다. 또 인민군들이 후퇴할 때는 아버지 친구인 당시 면장님이 빨갱이들의 공격을 피해 우리 집에 와서 숨어 있다가 다음 날 아침에 돌아갔다. 또 반공포로도 우리 집에 머물렀다. 논산 연무대 쪽에 인민군 포로들이 있었는데 이승만 대통령이 반공포로를 석방할 때 그들 중에 일부가 동네마다 배정을 받아 우리 집에도 잠시 있다가 갔다. 당시 거제도 수용소는 규모가 엄청난 곳으로 중공군 포로들도 그곳에 많이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반공포로들을 석방할 때 공산주의를 버리고 전향한 사람들은 남한에 받아들여 정착하게 하고 전향하지 않은 사람은 북한으로 되돌려 보냈다. 또 북한에 잡혀있던 국군 포로와 판문점 다리 위에서 교환하기도 하였다.

한국전쟁 때 사람 죽이는 건 직접 목격하지 못했지만 수많은 선량한 사람이 희생되었다. 특별히 곳곳에 퍼진 지역 빨갱이들은 지역 유지들과 지주들, 유명인들을 엄청나게 괴롭혔다. 특히 우리 마을과 가까운 한 곳은 남한의 모스크바라고 불릴 정도로 남로당 빨갱이가 많아서 그 동네에는 과부들의 숫자가 엄청 늘어나기도 했다. 전쟁 때 우리 동네에서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죽지는 않았다. 미군 비행기가 인민군을 폭격하는 건 한번 봤다. 마을 고개 너머에서 비행기 한 대가 오더니 검은 고무신짝 같은 검은 물건을 떨어뜨리고 갔다. 친구 영환이와 나는 처음 보는 물건이라 그게 뭔지 잘 몰랐다. 그것이 두려워 우리는 감나무 옆에 숨다가 모시밭으로 들어갔다.
[출처: 고난 속에서도 행복한 목사(신현국 자전에세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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