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nel ( 2023-05-08 17:12:32 , Hit : 63
 고난 속에서도 행복한 목사

그런데 잠시 후에 ‘쾅’하는 엄청난 소리가 났다. 그 후에 살펴보니 우리가 기대고 서 있던 감나무 밑에 폭탄 파편이 땅속 깊이 박혀 있었던 것이다.
하마터면 폭탄 파편이 우리 몸에 맞을 수도 있는 아주 위험한 상황이었다. 나중에 보니 폭탄이 터진 자리에는 크고 깊은 새 웅덩이가 생겨났다.

나중에 한국군이 밀고 올라갈 때 뒤처진 인민군들은 지리산에 숨어들어 갔다. 인민군 잔당들은 지리산에 있다가 산을 타고 우리 마을이 있는 계룡산까지 올라왔다.
지리산과 계룡산은 지리적으로 산맥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비교적 가까운 편이다. 인민군 게릴라들이 밤중에 그 산으로 건너와서 우리 마을의 경찰서를 습격하고 소와 양식도 탈취해 갔다.
우리 마을은 다른 마을보다 그래도 인민군의 피해가 덜한 곳이었다. 인공 치하가 석 달 정도밖에 안 되어서 피해도 적었고 수복 이후 사회가 안정되어 참으로 다행이었다.
9.18 수복 후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갔다가 다시 중공군을 만나 내려올 때도 평택까지만 내려오고 다시 반격하여서 우리 마을엔 피해가 없었다.
우리 마을은 전쟁 초기 한두 달만 피해를 보고 거의 피해를 보지 않은 평화로운 동네였다. 나는 전쟁 통에 국민학교를 다녔다.
전쟁으로 인해 우리 마을에서 가장 피해가 큰 사람은 면장이나 순경, 지주들이었다. 그들의 가족들이 납치나 죽임을 당하는 등 여러 피해를 입기도 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아버지가 서울에서 다시 사업할 때 어머니는 시골에서 홀로 할머니를 모시고 농사를 지으셨다.
아버지는 어머니 생신이나 명절 때만 집에 내려오셨는데 그때마다 서울에서 번 돈을 주고 가셨다.
그러다 보니 내가 그렇게 부족함 없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것 같다. 나는 운동화를 신고 다닐 정도로 괜찮게 사는 집 자식이었고 국민학교 다닐 때는 나름대로 공부를 좀 했다.
53년도 휴전이 될 때까지 시골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그때 우리 학교는 반이 두 개였다. 한 반의 학생이 한 60여 명 되었는데 나는 반에서 3~4등 안에는 들 정도였다.
당시 서울 집에는 시골에서 나와 초등학교를 같이 다닌 5살 연상의 사촌 형 신현길이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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