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우리 집에 살고 있는 사람, 고양이, 강아지 다 그려도 되요.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손가락 가족으로 표현해 보세요. 그리기 싫은 손가락 가족은 냄새나는 발가락에 그려도 되요."
선생님의 말에 아이들은 도화지가 넘쳐나게 그려댔다.
아빠, 할머니, 나 그리고……. 도화지 위의 손가락 가족은 심심해 보였다. 엄마는 우리 집에 없고 나는 엄마의 얼굴도 생각이 안 난다. 엄마는 가족일까?
엄지손가락은 아빠다. 엄지손가락에 빗자루를 쥐어 주었다. 할머니는 새끼손가락(이건 나 고진주다) 옆에 있는 손가락(항상 내 옆에서 보살펴 주니까)이다. 할머니 손가락에 빠글빠글 머리를 그려 주었다.
옆 짝꿍 슬기는 가족이 세 명인데 손가락 여섯 개에 색칠을 하고 있다.
선생님은 우리 옆에서 그림을 보고 계셨다. 나는 가운뎃손가락에 왕관을 씌워 주었다.
"선생님한테 설명해줄 수 있니? 왕관은 누구야?"
선생님은 슬기가 아니라 나에게 물어 보았다. 나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엄마는 여왕이라 왕관을 썼어요. 아빠는 환경미화원이라 청소를 해요. 집에서도 밖에서도 해요. 그리고 할머니는 내 옆에서 항상 보살펴 줘요."
"우와! 엄마는 여왕님이시고 아빠는 우리 동네를 깨끗하게 해주는 훌륭한 일을 하시네. 할머니는 항상 진주 옆에서 보살펴 주고. 진주는 좋겠네."
슬기는 내 말을 듣다가 그림에 왕관과 리본을 그려 넣었다. 그리고 선생님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았다. 그때 수업 종이 울렸다. 선생님은 성큼성큼 교단으로 걸어갔다. 옆 반 선생님은 긴 곱슬머리에 하늘하늘 레이스가 달린 치마를 입는데 우리 선생님은 바지에 짧은 머리라 뒷모습은 남자 같다. 그래도 난 우리 선생님이 좋다.
선생님 앞에서 손가락 가족 그림 설명을 하려던 슬기의 입이 삐죽 삐죽거렸다. 슬기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째려보았다. -계속-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