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서울에서'여리고 골짜기'를 찾았다. 제일 먼저 조선 시대에 전염병 환자를 수용했던 활인서가 있던 곳이자, 어린 아이들의 시체나 연고 없는 시신을 묻어 두었던 서대문 밖 애오개(아현)가 나왔다. 스크랜튼은 1889년 11월에 애오개 언덕에 있던 초가를 사들여 시약소(dispensary)를 차려 당시에 버려져 있던 환자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이듬해에 상인들과 걸인들이 많이 사는 남대문 시장과 동대문 언덕에도 시약소를 설립했다. 그는 서대문, 남대문, 동대문 시약소에 전도인들을 상주시켜 환자들을 돌보며 복음을 전하게 했다. 그렇게 해서 치료 받은 환자들이 복음을 접하고 교인으로 되었으니 그것이 오늘날의 아현교회, 상동교회, 동대문교회로 발전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한국의 선교 역사는 고아원, 병원, 학교 사역을 통해 가난하고 버려진 고아와 환자들을 먹여주고 치료하며 가르치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 결과로 선교사에 대해, 기독교에 대해 의심과 불신의 눈초리로 거리감을 두던 토착민들은 버려진 고아와 환자들을 섬기며 돌보는 선교사들의 선한 사마리아인 행동에 감동해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이거두리의'걸인 사랑'
선교 초기, 기독교에 대해 배타적이던 양반 고을 전주에서 처음 교회에 나온 양반 출신 교인으로 이보한 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아버지가 감찰, 큰아버지가 진사 벼슬을 하고 자신도 참봉 벼슬을 했던 전통 있는 전주 이 씨 양반 집안 출신으로 1905년에 전주 서문밖 교회의 교인이 되었다. 그는 교인이 되고 나서 본명보다'이거두리'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해졌다.'거두리'라는 칭호는 그가 예수님을 믿고 교인이 된 후 전주 시내를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라는 찬송을 부르면서 돌아다녔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그만큼 복음 전도에 열심이었다. 그런데 이거두리가 찬송을 부르면서 거리에 나설 때마다 동행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시장 바닥의 걸인들이었다. 그는 교인이 된 후 편안한 양반 생활을 포기하고 걸인들의 친구가 되었다. 양반 자제였지만 서자 출신에다 어려서 열병을 앓다가 한쪽 눈을 잃어'반골'기질이 농후했던 그는 교인이 된 후에도 제도권 교회 밖에서'파격적인'전도 행각을 일삼았다. 달구메기기 노래가 일품이었던 그는 상가에 찾아가 노래해 주고 품삯으로 받은 돈으로 거지들을 먹였고, 거지들을 이끌고 부잣집만 골라 다니면서 거둬 먹였다. 장날에 나무를 팔지 못한 가난한 나무꾼들을 보면 그들을 부잣집으로 데리고 다니면서 팔아 주었고 부잣집 아들과 거지의 옷을 바꿔 입히기도 했다. 교인 변호사를 찾아가'천국에 달아 두라'며 돈을 빌려다가 거지들에게 먹인 이야기 등 .... 그의 기행과 선행에 관한 이야기들은 풍부하다. 소설가 백도기 목사는 어머니에게 전해들은 이거두리에 관한 이야기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그는 전도만 하는 게 아니라 헐벗은 사람을 보면 제 옷을 벗어 주었고 굶주린 사람을 만나면 제 집에 데려다가 밥을 먹였다. 그러니까 그의 옷 주제는 항상 거지꼴이었다. 친구와 친척들이 보기 민망해 새 옷을 주면 그는 거리로 나가 거지와 옷을 바꿔 입었다. 그러자 친척과 친구들은 그를 미쳤다고 외면했고, 그 대신에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들과 거지들은 그를 친형님처럼 따랐다. 이상한 것은 교회마저 그를 달가워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수를 믿을 바에야 이거두리 선생처럼 믿어야 한다는 세상의 여론을 아마 그들은 감당키 어려웠던 모양이다.'이처럼 제도권 교회보다 일반 사회에서 그'신앙'을 인정받았던 이거두리는 걸인들의 친구이자 대부로 살다가 1931년 8월에 60세로 별세했다. 전주 이 씨 집안에 의해'패륜아'로 낙인찍힌 그는 시신조차 종중 묘역에 들이지 못하는 바람에 전라도 거지 수백 명이 모여'걸인장'으로 치렀다. 얼마나 많은 조문객들이 몰려들었던지 그 무렵에 상업은행을 창설한 전주 부자 박영철의 부친상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이 덕 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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