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 16:9) -
인생여정에서 목표를 설정하고 한 목표를 향해 묵묵히 가려고 해도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것은 주변 환경이 변하고 인간의 마음이 순간 마다 바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마다 목표를 세워 꼭 성취할 것을 굳게 다짐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목표를 잊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내가 만난 시각장애인 가운데 자신의 목표를 포기하지 않고 일반인도 해내기 어려운 일을 해낸 시각장애인 최초의 판소리 고수 조경곤 집사가 있습니다. 판소리 고수가 된다는 것은 시각장애인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운 목표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포기하지 않고 해냈던 것입니다.
고수가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우면 “소년 명창은 있어도 소년 고수는 없다”고하고 ‘1고수 2명창’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판소리는 악보가 없기 때문에 보통 고수들은 명창들의 입을 보고 장단을 맞추지만 시각장애인은 볼 수 없으므로 감각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한계를 느낄 수 있는데도 조 집사는 고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시각장애인이 목표를 성취하려면 먼저 자신의 장애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중도에 시각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대체로 장애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것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여 창피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비해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훨씬 개선되어있지만 장애 사실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장애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면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서 자신과의 싸움을 해야 합니다. 시각장애를 극복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것은 물론 아닙니다. 실명하면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여 절망에서 벗어나는 데 많은 시련을 겪어야 합니다.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마치 어린 아이가 첫 걸음을 내딛는 것과 같습니다. 깜깜한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하며 눈 대신에 소리, 청각과 촉각으로 감각을 익혀야 합니다.
조경곤 집사는 16살 때 운동을 하다가 눈에 충격을 받아 망막박리로 여러 차례 수술을 했지만 시력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전혀 생각지 않은 중도 실명으로 3년간 세상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방황을 했습니다. 그러다 20년 전에 서울로 상경하여 재활교육을 받으려고 수소문한 끝에 새빛맹인 교회를 알게 되어 찾아 온 것입니다. 나는 새빛맹인 교회에서 전도사로 있으면서 중도에 실명한 시각장애인에게 점자를 가르쳤습니다.
대부분 중도 시각장애인들은 점자를 배울 때 점자를 일반 글자모양으로 생각하여 배우는 것을 쉽게 생각하지만 정작 배우다보면 점자를 손가락 끝으로 익히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게 되면서 점자 배우는 것을 포기하려고 합니다.
나는 조 형제에게 점자를 가르치면서 그에 대해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구수한 남도 사투리를 사용했으며 그 당시에도 조 형제가 국악에 대해 깊은 관심이 있었지만 나는 그가 전문적으로 국악을 할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김제에서 태어나 판소리를 몹시 좋아했던 이웃에 사시던 큰아버지 덕에 어려서부터 소리명창들의 판소리 가락을 자연스럽게 들으면서 자랐고 부모 몰래 용돈을 모아 학원을 다니면서 배웠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중에 큰아버지가 알고는 “국악은 배고프니까 하지 마라”고 말려 명창의 꿈을 접어야 했습니다.
조 형제는 재활교육을 받고나서 신앙에 심취하여 신학교에 입학을 했으나 국악을 하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생각하여 국악을 배우는 것에 전념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릴 적 접었던 판소리 고수의 길을 걷기 위해 국내 고법 1인자들을 찾아다녔지만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여러 번 거절당했습니다. 그러던 중 2002년 판소리 명창의 집에 들어갔다 스승 이은태 선생을 만났습니다. 조 형제는 3년 동안 이은태 선생을 찾아다니며 북을 배웠습니다. “북소리를 듣고 옛날의 꿈이 되살아났어요. 이은태 선생님은 너는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고 희망을 주시며 손수 손을 잡아주며 북을 가르쳐 주셨어요.” 그 격려의 말이 조 형제가 고수의 길로 가는 데에 큰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18㎏짜리 북과 녹음기를 둘러메고 하루에 10시간 이상 북을 쳤습니다. 꿈속에서도 북채를 놓지 않았습니다. 그는 인간문화재 김청만 선생에게 사사하고, 서울 전국 국악경연대회, 순천 팔마고수 전국경연대회 등에서 여러 대회에서 입상했습니다. 안숙선 김수연, 왕기철 등 당대 최고 명창과도 호흡을 맞추며 고수로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꿈을 이룬 조 집사는 판소리를 배우고 싶지만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포기하는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는 “장애인들에게 노력만 한다면 어떤 불가능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20년 동안 고수의 길을 걸어온 결과 꿈에도 그리던 인천시 무형문화제 27호에 선정 되는 놀라운 꿈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흔들림 없는 목표는 많은 난관이 있지만 꿈을 성취하게 하는 지름길입니다.
- 전명훈 목사(에벤엘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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