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시 24:1) -
삼년 전에 광주광역시 세광맹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던 이길주 선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고영곤이라는 제자가 있는데 상명대 실용음악과에 합격을 하여 서울에서 생활할 곳을 찾고 있던 중에 동료 교사 김준현 선생의 소개로 전화를 했다는 것입니다. 김준현 선생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에벤엘 미션홈에서 1년동안 생활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마침 미션홈에 한명을 받아 들일수 있는 정원이 남아 있어 서울에 올라와서 같이 생활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한달쯤 지나 영곤 형제는 아버지와 함께 에벤엘 선교회 사무실에 방문을 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전남 광양시청에서 근무하고 있었으며 휴가를 내어 아들을 데리고 나를 만나려고 왔습니다. 우리는 영곤형제가 에벤엘 미션홈에서 어떻게 생활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영곤형제는 똘망똘망하니 키가 작은 귀여운 청년이었습니다.
이성숙 간사는 영곤 형제가 에벤엘 미션홈에서 적응할 수 있도록 생활 규정을 가르쳐주고 미션홈의 공간들을 알려주었습니다. 시각장애인은 생활환경이 바뀌면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고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특히 외부 보행을 할 때에 낯선 공간을 익히는 데에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습니다. 이간사가 7호선 남성역 지하철역까지 독립 보행을 할 수 있도록 보행 훈련을 시켜주었더니 영곤 형제는 금세 적응을 하고 익숙한 듯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영곤형제는 선천적으로 시각장애가 있어 감각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시각장애인은 보행을 할 때에 눈이 보이지 않는 대신 청각, 후각, 안면감각, 승용차 방지턱 등을 이용합니다. 시각장애인은 일반인에 비해 감각이 남다르기는 하지만 어릴 때부터 장애를 겪은 사람들은 대체로 감각이 더 뛰어납니다. 내가 알고 있는 시각장애인 지인은 감각이 얼마나 뛰어난지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초록불로 바뀌면 음향신호기가 없어도 안다는 것입니다. 그는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의 파장을 느낄 수 있어 신호등이 바뀐 것을 인지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시각장애인이라 할지라도 감각의 차이는 있습니다. 영곤 형제가 급한 일이 있을 때 뛰어가듯이 보행을 하는 것을 보면 마치 보이는 사람이 다니는 것과 같이 느껴져 사람들이 신기하게 보기도 합니다.
영곤 형제는 아직 어려서인지 오전수업이 있는 경우 늦게 일어나 늘 지각을 하는 것입니다. 미션홈에서 영곤 형제는 맹학교 선배인 진훈 형제와 함께 방을 사용하고 있는데 생활방식이 달라서 인지 주로 거실로 나와 생활하곤 합니다. 영곤 형제는 밤늦게 까지 지새다가 아침 늦게 일어나 예배시간에도 항상 늦게 와 나의 지적을 받는데도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또한 미션홈에서도 거실을 영곤 형제의 물건으로 정신없이 어질러 놓아서 이성숙 간사는 물건 정리하라고 잔소리를 해도 들으려고 하지 않고 대꾸도 하지 않는다며 개선이 이루어지지도 않는 것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하소연을 하곤 합니다. 사람마다 자신만의 습관이 있어 그것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은 거 같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에벤엘 미션홈으로 오는 방법은 7호선 남성역에 내려 걸어오는 방법과 2호선 낙성대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타고 오는 방법이 있습니다. 낙성대역에서 내려 걸어오려면 20분 정도의 시간이 걸립니다. 한번은 영곤 형제가 홍대근처에서 공연을 하고 밤늦게 에벤엘 미션홈으로 귀가하려는데 마을버스가 끊어졌다고 합니다. 어쩔 수 없이 낙성대 역에서 걸어서 가기로 했는데 낙성대역에서 현대홈타운을 지나 동작고등학교로 오는 길은 평소에도 보행하는 사람이 적은 곳입니다. 하물며 밤늦은 시간이었으니 지나다니는 보행자가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영곤 형제는 쉽게 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길을 잃고 물어볼 수 있는 사람도 없어 당황하고 헤매다가 1시간이 걸려 겨우 미션홈으로 왔다고 합니다. 사람은 예상치 못한 환경에 직면하게 되면 당황스러워 실수를 하곤 합니다. 보행을 잘하는 영곤 형제조차 자주 다니는 길이 때로는 낮선 길로 인식됐던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실수는 몰라서 일어나는 것보다 방심을 해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작년 11월 말에 김정호 목사님이 예배를 드리려고 에벤엘 선교회 사무실을 방문을 했습니다. 김정호 목사님은 음악에 조예가 있었으며 교회에서 기타 반주와 드럼을 치기도 했습니다. 전에 내가 영곤 형제의 드럼 연주를 듣고 싶어 혹시 연주할 기회가 있으면 녹음을 해 달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그날 마침 영곤 형제가 있어 전에 연주 녹음한 것을 김목사님께 들려주었더니 김목사님은 일반인 드러머처럼 연주를 잘 한다고 하면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나는 영곤형제가 평소 생활을 하는 것을 보아 연주를 잘 할 것이라고 전혀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그날 영곤 형제의 연주를 듣지 않았다면 영곤 형제의 단점만을 보고 장점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얼굴이 다 똑같지 않은 것과 같이 성격과 능력이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 전명훈 목사(에벤엘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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