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의 화두는 몇 날 몇 밤 나를 괴롭힌 후, 다행히 명쾌한 답으로 타파되는 극적인 순간을 맞이했다.
'아!!! 내가 나중에 커서 백화점 사장이 되면 되잖아?'
못생긴 임순이는 미스코리아가 되겠다고 하고 공부 못하는 경애는 선생님이 되겠다고 하고, 경애의 동생, 경수도 콧물을 질질 흘리는 녀석이 커서 대통령이 되겠다고 큰소리치는데, 내가 백화점 사장이 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어른이 되면 모든 것이 다 된다. 낮에는 보통 백화점처럼 손님이 쇼핑하고, 백화점이 끝나는 밤이 되면, 조용히 불을 켜고 나 혼자 그 안을 마음껏 돌아다니리라. 나를 쳐다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멋진 생각에 스스로 감탄했다.
'그동안 괜한 고민을 했네.' 피식 웃음마저 나왔다.
그러나 생각보다 세월은 빨리 흘렀다. 꿈을 꺼낼 틈도 없이 우리는 금방 어른이 되어버렸다. 임순이는 마트의 직원이 되었고 경애는 식당에서 일하고, 현철이는 부모님을 도와 재래시장에서 채소장사를 하게 되었다. 나는 대학가의 영어강사가 되었다. 아무도 꿈대로 되지는 못했지만, 모두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사는 동안, 세상도 열심히 변했다. 여기저기 도심에는 고급 백화점이, 큰 동네마다 대형 마트가 들어서고 거기서 쇼핑하는 일은 일상사가 되었다. 구경거리가 차고 넘치는 세상이 되어 장애인을 구경거리로 들여다보는 일은 없어졌다. 장애가 눈에 띄어도 모른 척 배려해 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핸드컨트롤이 생겨 장애인도 스스로 운전해서 차가 갈수 있는 곳은 어디든 갈수 있고 전동스쿠터가 보급되어 사람이 걸어가는 곳은 어디든 갈 수 있게 되었다. 목발 고무도 좋아지고 보조기도 좋아져 나는 넘어지지 않고 오래 걸을 수도 있다.
늦은 시간 백화점 문화센타 강의가 끝날 때 스쿠터를 타고 백화점을 휙 둘러보고 마트에 갈 때가 있다. 마감 임박시간의 할인 상품을 몇 개 담고 기분이 좋아져 천천히 매장을 돌다보면 옛날 생각이 겹쳐 떠오른다. 그 때 그 골짜기에서 고꾸라졌던 곤혹과 슬픔마저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런 일이 없었다면 이 평범함이 이토록 충만한 행복으로 느껴질 수 있을까? 행복이란 소유한 자의 것이 아니라 누리는 자의 것! 백화점 주인이 되지 않았어도 내 꿈은 고스란히 이루어진 셈이다. 백화점과 대형마트를 내가 가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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