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호와는 나의 사랑이시요 나의 요새이시요 나의 산성이시요 (시 444:2) -
성산악 입구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한라산 등반을 위해 시각장애인과 자원봉사자를 1:1 짝을 지으려고 했지만 자원봉사자가 부족하여 단독 보행이 힘든 시각장애인 우선으로 자원봉사자와 짝을 지었고 단독 보행이 어느 정도 가능한 시각장애인은 1명의 자원봉사자가 2명의 시각장애인을 도와 산에 오르기로 하고 한라산 산행을 시작하였습니다.
우리가 산행을 계획했을 때 우선적으로 생각했던 것은 가능하면 모든 회원들이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산행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준비를 하면서 초보자들이 오르기 쉬운 코스를 알아보았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알아보던 중 전에 내가 잘 알고 지냈던 김종권 형제에게 한라산 등정에 관해 물어보았는데 김 형제는 서울맹학교 이료재활과에 재학 중에 수학여행으로 한라산 진달래밭 대피소까지 올라갔던 적이 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우리도 진달래밭 대피소까지 쉽게 올라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한라산 등반 코스를 성산악 해발 750m에서 진달래밭 해발 1500m 대피소까지로 정하였습니다. 6년 전 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백두산 천지에 올라간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남한에서 가장 높은 한라산 등정을 한다는 생각에 다시 가슴이 벅차 올랐습니다.
내가 그 전에 산행을 한 것은 어린 시절 살고 있던 신촌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안산에 올라갔던 것과 설악산 흔들바위까지 올라갔던 것이 전부였습니다. 경험이 별로 없어서인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한라산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것 같습니다. 우리 일행 역시 들뜬 마음으로 산행을 시작한 나머지 흰지팡이를 놓고 온 회원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성산악 입구에서 출발하여 짝을 지어 등반을 시작했습니다.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는 길은 돌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올라가는 길이 끝이 없이 불규칙한 돌로 포장된 길 이었습니다. 돌길을 올라가며 제주도가 왜 삼다도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한라산이 마치 돌로 이루어진 돌밭처럼 그렇게 돌이 많은 산은 난생 처음이었습니다. 흰지팡이로 돌 하나 하나를 확인하며 최봉용 선생님의 안내를 받으며 올라갔습니다. 간간히 나무 위에서 까마귀 우는 소리가 들렸고 까마귀가 터를 잡은 듯이 제주도에는 까마귀가 많았습니다. 나는 일행 뒤에서 출발했는데도 뒤로 처지는 일행들이 생겼습니다. 평소에 운동이 부족한 시각장애인에게 이렇게 험한 산행을 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 명도 불평하는 사람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산행을 했습니다. 나는 제일 앞으로 나서게 됐고 중간에 속밭 대피소에서 잠시 쉬고 있었습니다. 뒤따라 시각장애인 장미희 회원과 함께 박지원 자원봉사자가 도착하였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반갑게 맞으며 응원을 했습니다. 다시 진달래밭 대피소 출발을 하였는데 예상 밖으로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되돌아오는 시간을 생각해서 사라오름까지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산 정상에 가까울수록 공기는 너무 상쾌했습니다. 그날은 산행하기에 맑은 날씨여서 최 선생님은 사라오름에서 백록담이 앞에 뚜렷하게 보인다고 하면서 백록담을 배경으로 기념촬영도 했습니다.
사라오름에서 잠시 쉬며 점심식사로 도시락을 까먹고 있는데 시각장애인 이행순 회원으로부터 시각장애인 유승열 회원이 사라졌다는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그녀는 등반하는 것이 힘들어 중도에 포기하고 시각장애인 유승열 형제와 함께 등산로 따라 내려가고 있었는데 승열 형제의 손을 놓쳤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자원봉사자가 부족하여 생긴 일이었습니다. 나의 심장이 철렁거렸습니다. 이행순 회원은 승열 형제를 찾아 내려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나는 밥이 입에 들어가는지 코에 들어가는지 몰랐습니다. 혹시 유승열 형제가 길을 잃어 변을 당하지 않았을까!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나를 안내했던 최봉용 선생님은 유형제가 길을 잃어 다른 길로 가지 않는지 내가 걱정을 하자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우리가 올라왔던 길가 양편에 밧줄이 걸쳐있어 안심해도 된다고 했지만 걱정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성숙 간사에게 전화를 걸어 혹시 유형제를 찾으면 연락을 달라고 했습니다. 이성숙 간사님 부부는 등산로를 따라 내려가면서 유형제를 찾았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30분쯤 지나 이간사님은 승열 형제가 산에서 안전하게 내려와 버스에서 쉬고 있다고 전화를 해 왔습니다. 이 간사님의 전화에 나의 걱정은 한 순간에 사라졌습니다.
우리 일행 모두가 사라오름까지 올라가지 못했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한라산에 등반하면서 시각장애로 인한 자신감 상실을 겪고 있었던 시각장애인 회원들에게는 재활의지를 고취시키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한라산 등반을 하면서 높은 산에 오르거나 낮은 산을 오르거나 겸손한 자세에서 등반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힘든 등반에도 무릅쓰고 자신의 시간을 내어 시각장애인 회원에게 도움을 주신 자원봉사자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 전명훈 목사(한국에벤엘선교회 대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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