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복지 사회’ 라고 할 때 ‘더불어 사는 사회’를 연상하곤 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들 간에 아무런 편견이나 차별이 없이 함께 어우러져 사는 사회를 일컫는 말이기 때문인 것 같다.
시각장애라는 것은 이것을 직접 겪고 있는 우리 시각장애인들이나 주위에서 바라보는 비장애인들이나 각기 다른 의미로서 커다란 장벽이 되고 있다. 시각장애인들에게는 눈을 통해 보는 것으로부터의 차단과 그로 인한 활동과 정보 접근상의 불편이 그것이요, 비장애인들에게는 선입관과 편견으로 오는 인식 부족이 바로 그것이라 하겠다.
이 양측의 장벽 모두를 겪으면서 어제고 오늘이고 살아온 사람들이 바로 우리 시각장애인들이고 또 내일 역시 그렇게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 우리 시각장애인들이기에 이 ‘장벽 제거’에 발벗고 나서야 할 사람 또한 우리 자신임을 깨닫게 된다.
지난해 초여름에 삼성맹인안내견학교는 조지 커빙턴이라고 하는 미국 시각장애인 사진 작가를 초청하여 10여 명의 국내 시각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사진 교실을 한차례 열었다.
조지 커빙턴 씨의 시력은 왼쪽 눈은 전혀 안보이고 오른쪽은 정상적인 것의 5%, 그래서 사물의 윤곽만 흐릿하게 보이는 정도라 한다.
때문에 그는 사물을 정확하게, 그리고 면밀히 보기 위해서 사진을 찍었고 그 찍은 사진을 현상하여 확대 돋보기를 통해 비로소 그 사물의 자세한 모습들을 뜯어본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통사람들은 사진을 찍기 위해 세상을 보지만, 나는 세상을 보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라는 그의 말대로 그는 정말 사진을 통해서 그의 부족한 시력을 보완하고 세상 구경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야말로 시각장애인 중의 시각장애인인 Totally blind전맹이다. 그런데, 시각장애인이 사진을 찍는다는, 그런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어떻게 가능해 지는가를 확인하고 싶기도 해서 행사에 참여했다. 커빙턴씨에게 전맹인 나도 사진 찍는 일이 가능하냐고 물으니 시각적 기억력이 있는 후천성 시각장애인들이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용기도 주고 해서 카메라를 손에 들고 머리 속으로 모습들을 그리며 자연물들을 찍어보았다.
행사 마지막 순서의 품평회에서 커빙턴 씨는 내가 찍은 사진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오리가 염소처럼 생겼다고 농담을 했다. 내가 그의 지도 하에 열심히 찍었던 것이 오리였는데 정작 제대로 찍혀져 나온 것은 오리가 아닌 염소이었던 것이다. 독자들 가운데에는 우연히 제대로 찍혀져 나온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도 없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사진을 찍는 그 순간만큼은 그 대상을 보는 듯 했고 생각하는 것처럼 마구잡이식 촬영은 아니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일뿐만 아니라 시각장애로 잃어버린 많은 취미들 가운데 하나를 되찾는 설레는 순간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11세 때 완전 실명하고 나서부터 보는 것에 대해 포기하고 살았다. 그러나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만난 사람, 내가 찾아갔던 곳들을 내 손으로 직접 찍고 누군가에게 사진 설명을 들어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일은 눈으로 보는 것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정안인들이 보고 느끼는 것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수준에는 달할 수 있어 그것은 하나의 희열일 수밖에 없다.
‘시각장애’는 말 그대로 하나의 커다란 장벽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장벽은 그것을 뛰어 넘고자 하는 사람들의 극복의지에 반비례하는 것은 아닐까.
임경억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정보문화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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