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베푸시던 대로 내게 돌이키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시 119:132) -
에벤엘선교회에서는 시각장애인회원과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1년에 두 차례에 걸쳐 바깥 나들이를 합니다. 올해 4월에는 관악산 둘레 길을 걸었고 11월에는 수원 화성 둘레 길을 걸었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이 바깥 나들이를 좋아한다고 하면 앞을 볼 수 없는 데 무슨 재미가 있을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일반인이 생각과 달리 시각장애인들도 나들이 하는 것을 무척 좋아합니다. 일반인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나들이를 할 수도 있지만 시각장애인들은 누군가의 안내자가 없으면 바깥 출입 하는 것 조차도 버겁습니다.
내가 수원 화성을 가기로 계획한 것은 미국인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곳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어 시각장애인 회원과 같이 가고 싶었습니다.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수원화성은 사당동에서 차로 40분 밖에 걸리지 않고 우리가 가기에 좋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에벤엘 선교회는 승합차가 없었고 우리 일행 20여명이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것은 불편할거 같아 차량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문득 해마다 성탄절에 에벤엘 선교회를 방문하고 있는 큰바위 교회 임성철 목사님이 생각났습니다. 큰바위 교회는 수원에 위치하고 있어 혹시 차량 지원을 받게 되면 수원 지리도 잘 알 것 같아 임 목사님에게 전화를 걸어 차량 지원을 부탁했더니 승합차 2 대와 점심 식사를 대접해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차량을 지원만 받아도 감사한데 식사까지 대접을 받는 것은 미안해서 우리가 식사는 해결하겠으니 약간의 간식을 준비해 주면 고맙겠다고 했으며 일주일 후에 수원화성 일정이 구체적으로 나오면 전화를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일주일이 지나 임 목사님께 연락이 왔습니다. 큰 바위 교회 성도님이 우리 일행을 위해 한정식 식사와 만두를 간식으로 준비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큰 바위 교회의 도움으로 수원 화성 나들이는 수월하게 진행되었습니다.
토요일이 되면 과천 남태령 고개는 교통체증으로 옴짝달싹 못해 11월 26일 오전 9시에 우리는 과천 종합청사역 1번 출구 옆의 주차장에서 모여 교회 차량으로 이동하기로 했습니다. 행사를 하다보면 늦는 사람이 있곤 하는데 그때도 자원봉사자가 40분 늦게 도착하여 우리는 예정 시간 보다 늦게 융건릉으로 향했습니다. 오늘 일정은 우선 오전에 융건릉을 방문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융건릉에 도착했을 때 임성철 목사님 내외가 우리 보다 일직 도착하여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융건릉에는 빽빽하게 늘어선 노송이 많았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종류의 수목이 능을 수호하며 아름다운 풍광을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융릉은 비운의 사도세자의 능입니다.
노론들과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 등이 사도 세자를 무고하고 나경언이 세자의 비행 10조목을 상소 하자 영조가 분개하여 뒤주에 가둬 8일 만에 세자의 나이 28세에 죽고 말았습니다. 영조가 정치의 희생물로 아들을 죽였을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융릉 주위를 걷고 있었을 때 사도 세자의 슬픔을 아는 듯 눈이 살짝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어서 우리는 정조의 능인 건릉을 둘러보았습니다. 문화 해설자로 수고 했던 서 선생의 안내를 받아 알게 된 것은 조선왕릉의 진입, 제향, 능침으로 구성되어 있는 공간은 단순한 무덤이 아닌 죽은 자와 산 자가 만나는 공간으로 그 의미를 보여 주었다는 것입니다. 조선 왕릉은 경복궁 근정정과 같이 문신과 무신 상이 지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사후에까지 왕은 권세를 누리려고 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점심시간이 되어 융건릉 근처 한정식 식당에서 맛있게 식사를 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눈이 점점 많이 내리고 있어 남은 일정을 수정해야할지 망설였지만 의견을 모아 예정대로 수원화성으로 향했습니다.
수원 화성은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것으로 정조의 효심이 축성의 근본이 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연무대에 도착 했을때 눈이 몹시 많이 내려 일정을 변경하여 화성 어차를 타고 성곽 둘레를 돌고자 했으나 비록 눈이 내리고 있지만 성곽 둘레를 걷고 싶다는 회원들이 있어 예정대로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연무대를 시작으로 성곽을 따라 걸어서 방화수류정에 이르렀고 방화수류정의 계단을 올라갔더니 넓은 정자의 나무 바닥이 펼쳐있었습니다. 잠시 앉아 쉬려고 했지만 날씨가 쌀쌀하여 더 이상 머물 수 없어 방화수류정에서 내려와 성곽을 따라 다시 걸었습니다. 얼마 안가 수원천이 흐르는 화홍문을 지났고 장안문까지 도착했습니다. 잠시 장안문을 둘러보고 나서 임목사님의 안내를 받아 수원에서 유명한 만두집에 들어가 몸을 녹이고 맛있게 만두를 먹고 임성철 목사님 내외와 헤어졌습니다. 승합차에 몸을 싣고 과천 종합 청사역에 도착하여 우리 일행들은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헤어지는 것으로 일정은 마무리 되었습니다. 날씨는 좋지 않았지만 올해 첫눈을 맞으며 옛 선조의 발자취를 걸었고 큰바위 교회의 아낌없는 사랑에 힘입어 즐거운 나들이를 했습니다.
- 전명훈 목사(에벤엘 대표)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