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시민들의 기부는 시민사회 영역의 자발성과 연대의식, 그리고 책임의식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다. 복지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유럽의 여러 나라들의 역사를 보면, 사회복지의 발전이 민간의 자발적 노력과 참여를 통해 이루어져 왔으며, 이것이 나중에 국가부문의 정책으로 제도화되거나 시장에서 상품화된 경우가 많다. 시민사회 영역에서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개인 간에 이루어지는 상부상조 활동이야말로 오히려 사회복지의 원형에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사회복지 서비스 공급체계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전통 사회에서 계, 두레, 품앗이 등의 상호부조 문화가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상호부조의 전통은 한국사회를 경제적 빈곤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가깝게는 1990년대 말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미국 하버드대학교의 로버트 퍼트남(Robert Putnam) 교수는 이탈리아 지역에 대한 연구에서, “왜 북부 이탈리아 지역이 남부에 비해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 번영에 있어 앞서 가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시민사회 영역의 발달을 그 해답으로 제시하였다. 즉, 지역 주민들이 서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지역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전통이 강한 지역이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앞서 간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그리고 실증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곧, 현대 사회에서 기부 행위는 지역사회의 문제에 대한 자각과 자발적 참여, 그리고 연대의식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산업화와 도시화를 통해 해체된 지역공동체를 다시 살리는 결정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그리고 이렇게 부활한 공동체 의식은 다시 지역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풍요의 밑거름이 되는 선순환의 고리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셋째로, 기부 행위는 개인에게 부과된 시민으로서의 책임을 이행하는 것이다. 개인의 행복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결정되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개인의 행복이 심리적․영적 측면에서 개인의 마음가짐과 신앙심에 의해 좌우되는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경제적 풍요와 사회적 안정 등과 같은 요소들이 매우 중요한 요소임에는 틀림없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이 누리는 경제적 풍요와 사회적 안정은 대부분 좋은 직장과 일자리, 넓고 깊은 사회적․인적 네트워크 등을 통해서 오는 것이다.
또한, 경제적 풍요와 사회적 안정을 획득한 사람들은 이러한 개인적 자산을 통해서 다시 자신의 네트워크를 강화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와 명예를 얻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자신의 기득권을 늘려 갈 수 있는 이유는 이러한 조건들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의 평범한 시민들이 가진 조건이라고 해봐야 같은 고향이나 같은 학교, 혹은 같은 씨족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이긴 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마저 갖지 못한 많은 사람들은 아예 출발부터 경제적 및 사회적 기회를 상실하고 있는 것이 된다. 즉, 행복을 얻기 위해 필요한 경제적․사회적 자산을 갖지 못한다. 여기에서 사회적 책임이라는 것이 발생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은 아예 애초부터 그런 기회를 갖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기회를 나누어 줌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함께 경제적 풍요와 사회적 안정을 누릴 수 있도록 행동할 책임이 있다. 서양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지위에 따르는 책임’이라는 의미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개념을 통해 이러한 사회적 책임을 강조해 왔다.
사회 내에서 개인의 행복은 개인의 사적 소유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 내에 공동의 것으로 축적된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다. 근래에 미국의 유명한 투자가 워렌 버핏(Warren Buffet)이 수십조 원의 돈을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Bill and Melinda Gates Foundation)’에 기부한 것을 두고 전 세계가 칭송한 일이 있다. 워렌 버핏이나 빌 게이츠는 누구나 알고 있듯이 전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 사람들이다.
한동우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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