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는 취업 준비를 위해 상경해서 몇 개월을 혼자 지내다 올 1월부터 선교회에서 운영하는 그룹홈에 들어갔다. 들어가기 전에는 시간만 나면 그룹홈에서 접하게 될 낯선 환경과 공동생활에 대한 두려움을 이야기하곤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눈이 보이는 사람도 이사 한 번 하는 게 큰일인데 앞이 안 보이는 경우 터전을 옮긴다는 것이 얼마나 부담스러울까 같이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그룹홈을 방문한 첫날, 출입구를 잘못 찾아 이리저리 헤매면서 미로 같은 아파트의 구조에 당황한 것은 오히려 나였다. 보이는 것에만 의지하다 보니 아파트 구조는 생각 못 하고, 당연히 양쪽으로 있는 출입구가 유일한 통로라고 생각한 채 엉뚱한 곳에서 헤맸던 것이다. ○○씨는 대문을 열어주고는 “혼자 마음대로 살다가 여러 사람과 맞추면서 살려니까 어려움이 많지만 못 견딜 정도는 아니다”며 씩 웃었다.
이제 ○○씨는 집 안에서 구성원들과 같이 지내는데 익숙해졌다. 그리고 활동보조인이나 타인의 도움 없이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을 조금씩 늘려나가고 있다. 집안에서의 공동생활이 자리잡아가자 ○○씨는 봄부터 낯선 서울에서 홀로 외출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바깥출입을 조심스레 시도하는 ○○씨를 옆에서 지켜볼 때 제일 안타까운 순간은 인도에 설치된 점자 블록들이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상태로 방치되어 있을 때다. ○○씨가 지하철에서 집까지, 혹은 선교회를 오갈 때 점자블록 위로 여기저기 주차되어 있는 승용차나 오토바이 때문에 번번이 길이 끊기는 순간들이 너무 잦다. 도로 주변 점포주들도 아무 생각 없이 점자블록을 점유하고 물건이나 차량을 함부로 대놓곤 하는 것이다. 나부터도 지하철이나 인도 위의 오톨도톨한 점자블록을 그냥 색깔 들어간 도로 정도로만 여기고 그 블록을 통해 길을 찾아가는 시각장애인들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블록이 끊기는 곳, 블록 위에 물건들이 쌓여 있는 곳, 블록이 아예 없는 곳, 울퉁불퉁하고 군데군데 패인 도로들…….
서울이란 도시가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불친절한 도시인가 하는 점도 ○○씨와 공부하면서 새삼 알게 된 점이다. 그렇게 블록이 끊기고, 자동차로 가로막혀 있는 도로 위로 오늘도 ○○씨는 조심조심 발을 뗀다.
‘장애는 불편하다. 그러나 불행하지는 않다.’
삼중고의 성인 헬렌 켈러가 남긴 말이다.
공부를 하는 사람에게는 장애로 인한 여러 가지 불편 중에서도 앞을 못 보는 것이 으뜸의 불편일 것이다. 그런 불편을 딛고 점자 교정사를 목표로 노력하는 ○○씨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씨가 하루빨리 학습과 자립,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날이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희선(에벤엘선교회 상담 자원봉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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