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잠 15:16) -
시각장애인들이 생활하고 있는 에벤엘 미션 홈을 운영한지도 벌써 20년이 되는 동안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적지 않았습니다. 에벤엘 미션 홈을 거쳐 간 시각장애인들은 다양한 사연이 있었으며 그 가운데에 이성규 형제가 있었습니다.
이성규 형제는 서울에서 20세에 직장생활을 하면서 불의의 사고로 실명을 하여 어쩔 수 없이 고향인 전남 신안군으로 내려가 10여 년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냈습니다. 외딴 섬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라디오와 함께 하는 것이었으며 그에게 라디오는 유일한 벗이었습니다.
이성규 형제는 라디오를 벗으로 둔 덕분에 비교적 일반상식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한번은 내가 단기 선교로 아프리카대륙 동부에 위치한 섬 마다가스카라를 방문하고 와서 마다가스카라에 대해 말을 했더니 익히 잘 알고 있는 체 하면서 반응을 보였습니다. 또한 그는 상품이 걸려있는 라디오 퀴즈에 참여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으며 얼마나 방송 프로에 참여했으면 방송 담당자가 그의 목소리을 알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담당자가 눈치를 첼 까봐 전화번호도 변경하고 자신의 목소리도 바꾸어 퀴즈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이성규 형제는 10여 동안 외딴 섬에서 살았지만 이곳은 시각장애인 자신에게는 기회가 너무 없다는 것을 알고 서울에 있는 동생 집으로 올라가서 생활하기로 했지만 동생의 집이 비좁아 오래 거주하는 것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거주 가능한 장애인 시설을 찾기 위해 서울에 있는 여러 대형교회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이 형제’와 맞는 시설을 찾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다행이 마지막으로 전화 상담을 한 곳의 담당자가 에벤엘 미션 홈을 잘 알고 있던 덕분에 이성규 형제는 에벤엘 미션 홈에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형제는 오랜 시간을 혼자서 생활을 해서 그런지 에벤엘 가족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혼자서 식사를 하다가 갑자기 자리에서 손을 들고 일어나 운동을 하거나 주변 사람은 전혀 의식하지 않고 방에서 제자리 뛰기를 했습니다. 제자리 뛰기를 얼마나 심하게 했는지 방바닥이 내려앉을 정도였습니다.
또한 초저녁잠이 많아 남들보다 일찍 잠을 자고 일찍 일어나서 청소를 한다고 하면서 부산을 떨어 주변 사람들 깨어나게 하는 등 에벤엘 가족들과 적지 않은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고, 밖에서는 지하철에 승차하면 손잡이를 잡고 철봉을 하여 승객들의 이목을 끌어 같이 동행한 지인들을 난처하게 만들기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으며, 오직 나의 말만 듣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성규 형제는 서울생활 초기에는 이렇게 많은 문제행동 때문에 여럿을 힘들게 했지만 ‘이 형제’는 차차 적응해 갔습니다.
처음 그가 서울에 올라와 기초재활교육을 받고 나서 안마사직업교육을 받으려고 했지만 학력 미달로 안마사수련원에 입학할 수 없었습니다. 이성규 형제는 초등학교만 졸업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중학교 검정고시 과정을 공부를 해야 했고 결국 검정고시 시험을 통과를 했습니다. 부푼 꿈을 안고 2년 과정의 안마사 수련원 과정에 입학을 했을 때 아마도 그 감회는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실명이 삶의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실명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후 새로운 도전을 했던 것입니다.
한 번은 안마사 수련원 과정 여름방학이었을 때 ‘이 형제’가 안마 알바를 소개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며칠간 안마 알바를 하고 나서 나에게 찾아와 5만원을 편지 봉투에 담아 감사헌금으로 내미는 것이었습니다. 실명하고 나서 처음으로 번 돈이었고 또한 평소 100원 조차 아까워서 자신을 위해 돈을 쓰는데 매우 인색했던 형제의 모습으로 보았을 때 이 감사헌금은 뜻 깊게 느껴졌습니다. 자신이 그동안 행동에 대한 미안함과 에벤엘 미션 홈에 대한 고마움을 헌금을 통해 나타낸 것 이었습니다. 이후 그는 2년간의 수련원 과정을 마치고 에벤엘 미션 홈을 떠나 삼본에 있는 임대아파트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그렇게 이형제가 떠나고 그에 대한 소식이 점점 뜸해져갔습니다. 그런데 한 달 전쯤 에벤엘 미션 홈에서 이 형제와 가깝게 지냈던 유승열 형제와 통화를 할 기회가 있어서 이 형제의 대해 안부를 물었더니 3년 전에 사망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깜작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실 이형제는 그동안 지병이 있어 치료를 받았고 에벤엘 미션 홈에 있을 때 유난히 운동을 했던 것은 폐가 갑갑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이형제는 지병으로 인해 숨쉬기가 어려워졌고 결국 119에 실려 병원에 갔지만 안타깝게도 병원에 도착 할 때쯤 이미 숨을 거두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나와 대화를 나눌 때면 “하나님이 첫째이고 목사님이 둘째다”라고 말하곤 했을 정도로 신앙에 대한 믿음이 돈독했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서 자신의 비전을 이루지 못했지만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어느 누구보다도 확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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