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억수 같이 퍼붓는 아침, 집을 나서는 내 마음은 한없이 무거웠다. 나이 서른에 다니던 직장이 갑자기 문을 닫는 바람에 집 근처 스파게티 전문점에 파트타임 일을 하러 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나쁜 일은 한꺼번에 온다고 했던가, 근처에 살던 오빠 내외가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해 조카들이 우리 집에 와 있었고, 아버지의 퇴직과 함께 어머니도 갑자기 기력이 많이 약해졌다. 올 가을 쯤 내 결혼 날짜를 잡기로 되어 있었지만, 남자 친구마저도 회사 사정으로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되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사실상 우리의 결혼은 무기한 연기 되었다. 요즘 같아선 남자 친구의 애정 어린 격려조차도 전혀 위로가 못 됐다.
심란한 마음으로 일터에 도착해 보니 아침 당번인 아르바이트생이 아직 오지 않은 상태였다. 간밤부터 내린 비로 식당 앞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육중한 입간판이 넘어지고 화분들이 사방으로 날아가 깨져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주방의 불을 켜니, 어제 저녁 당번이 집에 가느라 바빴는지 설거지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홀은 물이 차 들어와 철벅대고, 깨끗하고 보송보송해야 할 하얀 식탁보도 축축하고 지저분하고... 한숨이 절로 나왔다.
우선 가게 앞부터 정리를 해야 했다. 한손엔 우산을 받쳐 들고 다른 한손으로 주섬주섬 정리를 하다가 아예 우산을 던져두고 팔을 걷어붙였다. 퍼붓는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온 힘을 다해 일으켜 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몇 번 더 그런 식으로 해 보다가 주저앉고 말았다. 괜히 화가 나서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서러움을 뚝뚝 흘리며. 그때 누군가 내 머리 위로 우산을 드리웠다. 고개를 들어 보니 웬일로 남자 친구가 서 있었다.“왜 비를 맞고 있어. 감기 걸리면 어쩌려구.”남자 친구는 나에게 우산을 맡기고 단번에 넘어진 입간판을 세웠다.
그러더니 나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 쓱쓱 젖은 바닥을 닦고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물에 빠진 생쥐 같은 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다. 청소를 마친 남자 친구는 가게 문을 나서며 말했다. ”윤희야, 사실 나 지금 면접 보러 간다. 잘 할 수 있도록 기도해 줘!“ 우산을 들고 바삐 지하철역으로 뛰어가며 가끔씩 뒤돌아 손을 흔드는 남자 친구의 모습.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조금 더 힘을 내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궂은 날도 맑은 날도 늘 그와 함께 힘을 내야겠다고 다짐하며.
가이드 포스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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