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적 사례에 의존하는 이벤트화된 기부행위는 결국 일상생활 속에 문화로서 자리잡지 못하고, 대규모 자연재해나 재난 등 특정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나, 연말연시 이웃돕기 기간 등 특정한 시기에만 의례적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인식하도록 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왜곡된 기부문화는 기부의 일회성과 단편성을 강화하고, 시민사회 영역에서 공동체적 유대감을 기반으로 하는 자발적 참여활동으로서의 특성을 발전시키지 못하며, 정서적이고 자선적 동기에 의한 기부를 강화함으로써 사회적 이슈와 요구에 대한 개인의 민감성과 책임성을 키우지 못한다. 또한 국민들을 주는자와 받는자로 구분함으로써, 기부자는 도덕적 우월감을 기반으로 대상자들에 대한 이중적 태도를 키우고, 수혜자들은 사회적으로 낙인감을 경험하게 된다.
셋째, 한국의 기부문화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정치적 목적과 정책 의도에 지나치게 좌우된다. 현대 사회에서 다양한 사회문제와 사회적 요구에 대응해야 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를 위한 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세기반을 튼튼하게 구축하는 것이 최우선의 과제이다. 그러나, 어떠한 정부나 지자체도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만능의 조세기반을 갖출 수 없다. 이것은 불가능한 것일 뿐 아니라, 바람직한 것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러나, 기부문화라고 하는 것은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회서비스의 공급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수단적인 개념이 아니다. 기부문화는 장기적이고 거시적 관점에서 시민사회를 강화하고 지속가능하도록 하는 원리에 가까운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정부와 지자체는 당면한 사회문제를 해결할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민간부문에서의 모금에 관한 제도를 지나치게 만들고 있다.
지난 1998년에 설립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관련해서, 모금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해소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유사한 모금조직을 관주도로 설립하고자 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정부가 이러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독점”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사회복지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재원을 민간부문에서 가능한 한 많이 개발하고자 하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이렇게 시민사회에서의 공익적 기부에 관해 정부가 지나친 간섭을 하게 되면, 시민들의 자발성이나 연대성에 기초해야 할 기부문화는 정착하기가 매우 어렵게 된다. 오히려, 시민과 기업들은 각종 모금단체로 부터의 기부요청에 막대한 피로감을 느끼게 되고, 이러한 현상은 기부문화 발전에 치명적 장애요소가 될 것임에 분명하다. 기부문화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기부금액이라기 보다,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연대의식 함양이다. 정부는 시민사회 영역에서 정책재원을 끌어 모으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가 자립적이고 자조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시민사회의 역량을 강화하고, 이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에 힘써야 한다. 이것이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정부의 부담을 줄이고, 사회문제와 욕구를 시민사회의 내부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는데 기여하게 된다.
3. 기부문화 정착을 위한 과제
현대 사회는 고령화, 저출산, 다양한 소수자집단의 등장, 환경파괴 등 과거에 비해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들을 안고 있으며,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자원이 필요하다. 특히, 한국 사회는 경제위기 이후 소득 및 문화, 교육기회에 있어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금과는 다른 자원동원방식이 사회적 합의를 통하여 제기되어야 한다. 즉,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요구를 충족하기 위한 공익적 재화와 서비스를 공급하는데 있어 국가와 시장, 그리고 시민사회가 각각의 책임과 역할을 분명히 하고, 이를 구체적으로 실행할 방도에 대해 정치적으로 타협하는 것이 필요하다.
21세기 최대 화두는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다. 19세기와 20세기가 성장과 발전 패러다임에 사로잡힌 세기였다면, 21세기는 지속가능한 발전만이 발전으로 인정되는 세기가 될 것이다. 가족과 지역사회를 강화하지 않는 발전방식은 결국 파괴적인 발전, 지속가능하지 않은 발전이며, 장기적으로는 발전이 아니다. 이웃과 지역사회를 고려하지 않는 개발과 발전은 더 이상 인정되지 않는다. 다음 세대의 빈곤을 담보로 이룬 경제적 풍요는 즉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생태환경을 파괴한 댓가로 얻은 일자리와 소득, 저개발 국가의 아동과 여성들의 노동을 착취한 대가로 얻은 경제성장은 오히려 독이 되어 전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한 사회의 기부문화는 이러한 역사의식을 기반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기부문화의 활성화와 바람직한 제도화를 위해 몇가지 제언을 첨언하고자 한다. ~~~~~~~계속
- 한동우(강남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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