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열하던 태양의 열기도 어느덧 식어가고 스산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한다. 물에 젖은 듯 빛 바랜 모습으로 흩어지는 낙엽에 그리움이 묻어오는 계절이다. 유난히도 가을을 타던 내게 있어 이번 가을은 좀 색다른 모습으로 다가서는 계절인 듯 싶다. 내가 남을 위해 무엇을 했다는 뿌듯함을 채색되는 그런 가을 말이다. 난 신체의 일부를 기증한다거나 하는 일은 나와는 별 상관없는 일로만 알았다. 가끔 매스컴을 통해 그런 미담을 접했을 때는 저런 사람들이 있으므로 아직 우리사회는 건강한 것이리라 위안을 삼곤 했었다. 그리고 그렇게 기증하는 일은 어떤 특별한 의식이 있는 사람들만이 하는 것인 양 늘 먼 발치서 구경꾼의 입장으로서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막상 내가 헌안을 처음 제의 받았을 때는 좋은 일이니까 좋겠지 생각하며 선뜻 응했다. 그러나 주위에서 보면 유교적인 생각들 때문에 헌안을 꺼리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고 한다. 심지어는 기독교인인 나 자신도 무의식중에 뿌리박힌 미신적인 편견 때문에 이따금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두 눈이 뽑혀나간 내 모습을 별로 보기 좋을 것 같지 않았고, 혹시 그런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로 가게 되는 것은 아닌가, 또는 부활 시에도 두 눈이 없는 상태로 부활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조금은 염려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들은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도 부활의 상태에 대해 신학적으로 무지했고, 헌안에 대해 사전지식이 없었음에 기인한 것임을 깨달았다. 목사님이 잘 설명해 주셨고, 또 헌안 봉사회에서 발간하는 회보 ‘보기를 원하나이다’를 통해서 나의 왜곡된 생각은 바로 잡혔다.
안구기증은 반드시 사후에 이루어질 뿐 아니라 안구전체를 들어내는 것이 아니고 단지 안구의 극히 일부분인 각막만을 적출하는 것이므로 전혀 시신이 흉하게 보이지 않으며, 외관상 아무 상처도 남는 것이 아니어서 염려하는 것과 같은 문제는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사후에는 육과 분리된 영이 떠돌아다니며 자신의 시신이나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합의 존재로 곧바로 하나님께로 가게 된다.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 시에 우리는 안구를 기증했다고 해서 각막이 없는 상태로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영과 육이 완벽한 거의 하나님과 같은 신적인 존재로 부활하여 영원히 하나님 나라에서 동거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괜스레 염려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보기를 원하나이다’를 통해 안구기증이 얼마나 필요한 일인가도 깨닫게 되었다. 내가 헌안해서 두 사람이 볼 수 있게 된다는 것, 또 필요한 안구보다 기증하는 안구가 태부족이라 각막이식수술을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어 기다리고만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이 눈은 이제 나만의 것이 아니라 나를 포함해 기증 받을 두 사람까지 해서 세 사람의 눈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내 눈으로 시력을 회복하게 될 분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내 눈이 나보다 심성이 곱고 착한 주인을 만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분들이 내 눈을 이식 받음으로써 하나님을 아는 계기가 되어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되어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재현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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