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nel ( 2023-09-15 16:11:10 , Hit : 114
 꿈

걱정했다고 하니 제 시간에 맞춰 입국은 했는데 같이 간 분들과 헤어지는 것이아쉬워 찻집에 들렸다고 한다. 기다리는 사람의 심정은 아는지 모르는지 전화기의 선을 타고 전해지는 음성은 참 밝다.

아버지와 밥솥을 합친 지 올해로 십 년 째다. 타 지역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다가 퇴직 후 본가로 돌아왔다. 살다보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 있기 마련이고 내 부모에겐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해로(偕老)하는 것이 당신들의 노력으로도 안 되는 것이었나 보다. 어머니의 부재 속에서 아버지와의 동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맞는 것이라곤 없었다. 체질적으로 추위를 많이 타는 나와 더위를 견디지 못하는 아버지, 배가 고파야 밥을 먹는 나와 끼니는 무조건 챙겨야 한다는 아버지. 사소한 것들의 불협화음은 소리 없는 창과 칼이 되어 불꽃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보다 더 힘들었던 건 풀어놓은 망아지마냥 밤낮 없이 돌아다니던 나에게 아홉 시를 넘기지 말라는 아버지의 통금령이었다. 여섯시에 퇴근해서 간단한 볼일을 본다고 해도 아홉 시 되기는 눈 깜짝할 사이다. 조선시대도 아니고 이건 말도 안 되는 어깃장이라 여겼다. 불편한 심기를 민낯으로 드러냈다.

살림을 합치고 한 달이 넘어갈 때쯤이었다. 세탁한 옷가지들을 빨래걸이에 너는데 아버지의 속옷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겉옷도 여러 날 입지 않은 어른이라 의아스러웠다. 유추 해 보건데 손수 속옷을 빠는 듯했다. 아무리 부모지만 입었던 속옷을 그것도 과년한 딸자식에게 보이는 일이 민망했나 보았다. 그제야 나만 불편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피할 수 없다면 부딪치는 것도 하나의 수다. 과하게 야한 브래지어와 팬티를 샀다. 그것을 손빨래해서 아버지에게 건네며 건조대에 널어 달라고 했다. 그 날 이후로 아버지의 속옷은 빨래 통에 들어오게 되었다.                 --계속--

-서혜정(지체장애3급, 경북) 전국장애인문학공모전 은상 수상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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