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nel ( 2023-11-22 15:35:35 , Hit : 78
 꿈

자의든 타의든 누군가를 맞춘다는 건 나를 저당 잡히는 일이고, 아무렇지 않다가도 엄청나게 신경질이 나는 거다. “나”라는 존재가 서서히 녹아내리는 것 같았지만, 볼멘소리를 해 본들 통하지 않을 것이기에 아버지가 잡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그런데 이게 뭔가? 이레나 주어진 자유시간 동안 내가 한 건 밤늦게 돌아다닌 것도, 심야 영화를 본 것도 아니었다. 그저 평소처럼 지냈다.


텔레비전에서 여행답사 방송이 나올 때마다 아버지는 유심히 봤다. 가끔은 메모도 했고 이것저것 궁금해 했으니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 있었던 듯하다. 어쩌면 아버지의 노년의 꿈은 세계 곳곳을 누비며 사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건 몸 성치 못한 나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버지가 나의 자유를 잡고 있다고 여겼는데 내가 아버지의 날개를 꺾고 있었던 거다.


아파트 단지 입구에 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 약간 굽은 아버지의 어깻죽지가 눈에 들어온다. 어린 시절 사고를 당해 몸 전체에 깁스를 했던 적이 있다. 그런 나를 업고 아버지는 하루가 멀다 하게 병원에 다녔었다. 언제나 단단할 줄 알았던 아버지의 어깨가 어느새 바싹 마른 나뭇등걸처럼 변했다. 도대체 부모의 책임은 어디까지이며 자식은 무슨 권리로 중년이 넘어선 지금까지 기울어진 초가집 같은 어른을 붙잡고 있단 말인가.


아버지는 무사히 귀가했다. 살은 좀 내렸는데 입가에 번진 미소가 꽃처럼 어여쁘다. 그 모습 보기 좋아 눈에 담으며 아버지에게 마음속으로 말한다. ‘아빠, 이젠 나를 잡아도 돼. 그것이 오늘부터 내가 꾸게 된 꿈이야’ 라고.

- 서혜정(지체장애 3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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