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릴 때 살던 고향은 나지막한 산 중턱에 자리 잡은 마을이었습니다. 그래서 저 멀리 아래쪽 풍경이 한눈에 훤히 내려다보였고, 그것은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습니다. 신작로 모퉁이로는 가끔씩 군용 트럭이 춤추듯 돌아 나오며 희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가곤 했습니다.
신작로 너머로는 논이 있고, 논두렁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맑은 시냇물이 흐르며 그 너머에는 철로가 쭉 뻗어 있었습니다. 논두렁에는 가끔 황새가 수십 마리씩 떼를 지어 내려와 긴 다리로 논바닥을 짚고 서서 긴 목을 구부려 논바닥을 깊이 살피며 우렁이를 주워 먹는 모습을 볼 수도 있었습니다. 봄날, 논물 속에는 올챙이들이 우글우글 거렸습니다. 저는 어린 마음에 금세 손으로 움켜잡을 수 있을 것 같아 잡으려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잡힐 듯 잡힐 듯하면서도 잡히지 않아 안타까움만 더할 뿐이었습니다.
논과 논 사이 좁은 물길로 올챙이들이 이쪽 논에서 저쪽 논으로 헤엄쳐 넘어 가는데 고무신을 벗어서 그것으로 좁은 물길로 넘나드는 올챙이를 잡으려고 해도 잘 잡히지 않았습니다. 졸졸졸 흐르는 냇가에는 물방개가 원을 그리며 놀다가 물풀 속으로 숨고, 피라미 두어 마리 어디로 가는지 쏜살같이 질주를 하고, 냇가 양옆에는 이름 모를 들꽃들이 피어 있었습니다. 동네 아이들은 한여름 날 냇가에 가서 물장구를 치며 물놀이하는 걸 좋아했습니다.
어느 날, 이웃집 누나 세 명이 냇가 물풀 속을 열심히 뒤지며 훑고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누나들은 몹시 걱정스러운 얼굴로 무엇인가를 열심히 찾고 또 찾았습니다. 잠시 후, 한 누나가 무척 기뻐하며 몸을 일으켰습니다. 그 누나의 손에는 여자 아이 들이 신는 코 고무신이 들려 있었습니다. 울긋불긋한 꽃이 그려진 고무신이었습니다. 냇가에서 신을 잃어버리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인 듯싶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저에게 검정 고무신 한 켤레를 사 주셨습니다. 두툼하고 바닥이 울퉁불퉁한 새 고무신이 햇빛에 반짝거렸습니다. 한여름이라 땀이 좀 차기는 했지만 새 고무신은 신기만 해도 기분이 날아갈 것처럼 좋았습니다.
어느 무더운 날이었습니다. 신작로를 가로질러 논두렁길을 지나 냇가로 나갔습니다. 맑은 물 속에 몸을 담그고 물장구를 치며 정신 없이 놀다가 한참 후에 보니 돌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은 신발 한 짝이 온데간데없었습니다. 주위를 샅샅이 찾아보았지만 고무신 한 짝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왼발인지 오른발인지 한쪽 고무신만 신고 집으로 걸어가는 제 마음은 처량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왜 그렇게 길이 험하다고 느껴지는지, 왜 그렇게 집으로 오르는 언덕길이 힘들게 느껴지는지, 왜 한쪽 고무신마저 버리고 올 수는 없었는지...
저는 도무지 균형이 잡히지 않아 절뚝거리는 무거운 발걸음을 떼어놓으며 집으로 향했습니다. 어머니가 사 주신 검정 새 고무신. 그것도 기차표 검정 고무신인데. 아니 말표인가? 물에 떠내려간 검정 고무신. 다시 찾을 수 없고 돌아올 수 없는, 어머니께서 사주신 검정 고무신이었습니다. 어릴 때 잃어버린 검정 고무신은 아쉽고 아쉬운 추억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고무신은 돈을 주면 다시 살 수 있는 물건입니다. 하지만 한번 잃어버린 뒤에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결코 살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생명입니다. 생명은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남깁니다.
예수님은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유일한 구원의 주이십니다. 다른 이름으로 보내 주신 이가 없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한복음 11장 25절～26절)
김호경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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