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잃고 아이 둘 결혼시켜 내보내는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이 허름한 옷가게는 내 삶의 터전이었다. 이젠 가게에 드나드는 손님은 물론, 동네 돌아가는 사정에 대해서도 웬만큼 훤하다. 어느 날 오후, 동네에서 처음 보는 할아버지가 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러더니 저렴한 가격에 내 놓은 여성용 파카를 한참 만져 보고 당겨 보고 하는 것이었다. “선물하시게요?” “아니오. 그냥 좋아 보여서….” 말 걸기가 무섭게 할아버지는 겸연쩍어 하며 가게를 떠났다.
다음 날도 그 할아버지가 가게 앞을 지나는 것이 보였다. 천천히 앞으로 걸음을 옮기던 할아버지는 다시 돌아와 물었다. “이거 언제까지 팔 거유?” “그거야 임자가 나타나면 드려야지요.” 아들 내외와 며칠 전 이사를 왔다는 할아버지는, 그냥 옷이 좋아 보여서 물어왔다며 걸음을 뗐다. 그리고 그 다음 날부터 할아버지는 매일같이 우리 가게에 들렀다. 마치 그 옷이 팔렸나 확인하러 오는 사람처럼.
그 일이 며칠 계속 되자 결국 내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할아버지, 누구 드리고 싶으신 건데요?” 주저하던 할아버지가 드디어 속을 털어 놓았다. “며느리 생일이 코앞인데 좋은 옷 하나 해 주고 싶어도 지금은 돈이 없어. 며칠 있다 큰아들이 보내 줄 건데, 그럼 생일이 한참 지나니까….” “많이 모자라세요?” “좀 모자라.” 하며 고개를 흔드시는 할아버지. 장애인 아들과 결혼해 아이도 없이 일만 하는 며느리가 너무 안쓰럽고 고맙다고 말하는 할아버지 눈가가 촉촉이 적어 있었다.
“며느님께 딱 맞을 거 같으시죠?” 나는 옷을 접어 봉투에 담으며 물었다. “아니야, 어떻게 그러나.” 한사코 손을 내젓는 할아버지. 한참 실랑이 끝에 내가 억지로 봉투를 쥐어 드리자, 할아버지는 미안해서 거의 울 듯한 표정으로 꼬깃한 지폐를 쥐어 주며 말했다. “아들이 돈 보내주면 꼭 갚을게.” “그 돈으로 며느님이랑 맛난 거 사드세요. 가끔 놀러 오시구요.” 몇 번이나 고맙다며 돌아서는 할아버지의 구부정한 뒷모습엔 미안함이 담겨 있었다.
며칠 후 장사가 끝날 무렵 할아버지가 숨이 턱에까지 차서 나타났다. “우리 며느리가 직접 만든 찐빵이야. 따뜻할 때 얼른 들어요.” 하며 황급히 봉투를 건네고 사라지는 할아버지. 아이들 떠나보내고 혼자 가게를 지키는 지금, 난 이렇게 사람 사는 맛에 장사를 하나 보다 생각했다.
가이드 포스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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