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부문화의 실태와 특징
한국에서 현대적 의미에서의 기부문화는 1990년대 중반 이후에 와서야 싹트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1960년대부터 80년대 중반까지 국가는 정치자금이나 국방비, 재해복구자금 등을 충당하기 위해 정부 주도로 모금을 하였으나, 이는 시민사회 영역에서의 기부문화 형성에는 긍정적으로 기여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다만, 1970년대에 시작된 “이웃돕기 성금” 모금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우리 사회 내에서 이웃에 대한 관심을 개인과 조직 사이에 제도화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민간부문에서 월드비전(구 선명회), 적십자 등 개별단체 수준에서, 그리고 종교계와 사회복지기관들을 중심으로 모금 및 후원 개발 활동이 전개되어 왔으며, 이는 우리 사회 내에서 기부에 대한 관심을 키우는 데 매우 중요한 계기를 조성하여 왔다.
1998년도의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설립은 우리 사회에서 모금활동을 하나의 제도로 정착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2007년도에는 3,000억 원 이상을 모금하는 성과를 보였으며, 이를 통해 한국의 민간 사회복지 서비스 영역을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대표적인 모금 및 지원기관으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다. 1999년도 이후 설립된 여러 공익재단(아름다운재단, 한국여성재단, 환경재단 등)들은 기존의 시민사회단체나 사회복지기관 등과의 협력을 통해 다양한 지원사업을 실시함으로써 민간 부문 비영리조직들의 사업수행 능력을 키우는 동시에 정부의 정책을 견인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한국 사회에서 모금과 기부는 더 이상 낯선 용어가 아니며, 시민사회영역의 단체와 조직들은 다양한 자금원으로부터 사업수행에 필요한 자금과 단체 운영경비를 지원받고 있다.
한국 사회의 기부문화는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을 갖는다.
첫째는, 한국 사회에서 기부문화는 기업이 주도하고 있으며, 그것도 대기업에 대한 의존이 지나치게 크다는 점이다. 한국의 대표적 모금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경우, 모금액의 70%가 기업으로부터 온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국의 기부문화에 있어 개인의 참여는 아직까지 매우 미미한 수준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민간부문에서 오랜 모금 경험을 갖고 있는 미국의 경우와 정반대의 현상이다. 미국의 경우에는 총 모금액의 80% 가량이 개인의 기부금에 의존하며, 기업의 기부금은 전체 모금액의 20% 미만이다. 게다가 한국에서 대기업에 의존하는 기부문화는 자칫, 시민사회의 자발적 참여와 연대의식의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즉, 대기업 중심의 기부문화는 개별 시민들이 소액 기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심리적 만족감이나 성취감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 또한 기업 중심의 기부문화는 시민사회의 비영리 조직의 활동이 기업의 의도와 영향력에 의해 좌우됨으로써, 자발성과 독립성을 생명력으로 하는 시민사회의 역량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둘째, 한국의 기부문화는 정서적 요인에 의해 좌우되는 경향이 있다. 아름다운재단의 조사결과를 다시 인용하면, 이 조사에서 한국 국민들의 개인 기부행위는 주로 비정기적(80%)이며 동정심이나 자선적 동기에 의한 것(60%)이 특징이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개인의 기부가 일상생활 속의 문화로서 자리 잡고 있다기보다는 일회적 행사로서 자선적 동기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정서적 사례에 의존하는 이벤트화된 기부행위는 결국 일상생활 속에 문화로서 자리 잡지 못하고, 대규모 자연재해나 재난 등 특정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나, 연말연시 이웃돕기 기간 등 특정한 시기에만 의례적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인식하도록 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왜곡된 기부문화는 기부의 일회성과 단편성을 강화하고, 시민사회 영역에서 공동체적 유대감을 기반으로 하는 자발적 참여활동으로서의 특성을 발전시키지 못하며, 정서적이고 자선적 동기에 의한 기부를 강화함으로써 사회적 이슈와 요구에 대한 개인의 민감성과 책임성을 키우지 못한다. 또한 국민들을 주는 자와 받는 자로 구분함으로써, 기부자는 도덕적 우월감을 기반으로 대상자들에 대한 이중적 태도를 키우고, 수혜자들은 사회적으로 낙인감을 경험하게 된다. (계속~~)
한동우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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