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신앙전통 안에서 전문적인 사회봉사
캘빈은 교회를 ‘성도의 영생과 구원의 말씀을 위탁받아 보존하여 전파하는 사명을 부여받은, 보이는 하나님 나라의 현현’으로 이해하고, 이 교회에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나라에 성도들을 초대하시고 그 안에서 향존할 수 있도록 제정하신 (가시적인) 외적 도구들 혹은 조력자들’이 직제화되어 있다고 하였다. 여기서 직제란 목사, 장로, 집사들을 의미하는데 그들의 직무는 먼저 세상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파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막 16:15)을 수행하는 일과 항상 우리 가운데 거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로 이해하였다. 캘빈은 또한 개혁 교회 목사들로 하여금, 성도들에게 ‘참된 경건’을 가르치는 것을 중요한 직임이라고 강조하면서, 참된 경건이란 말씀을 받고 전도의 삶을 살며, 구제와 봉사를 행하는 것을,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이 당연히 행해야 할 ‘참된 경건’이요, ‘소명’이라고 하였다.
캘빈은 이런 믿음을 구체적으로 실천하였는데, 그것은 구제와 봉사가 교회 직분자들의 매우 중요한 향존적 사명이라고 통찰한 캘빈의 신학적 이해로, 그가 결성한 ‘브루스 프랑세즈’(Bourse Francaise)를 통해 실제적으로 잘 이해된다. ‘브루스 프랑세즈’는 1545년에 요한 캘빈이 제네바로 피난한 기독교인들(특별히 구교에 대항한 프로테스탄트들을 지칭)을 위해 세운 국제 구호기관이었다. 브루스 프랑세즈는 당시 상당히 발전된 복지기관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브루스 프랑세즈의 대상은 언급한 대로 박해를 피해 제네바로 건너 온 어린아이, 여자, 노인, 청장년 등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집사들은 이들을 직접 상담하며, 그들의 필요를 따라 적절한 조치를 취하였다. 자영업을 할 수 있도록 대부를 해주거나, 무상구호를 하기도 했고, 고아들과 아이들을 돌보아 주기도 하였다. 직업훈련비를 보조해 주기도 하였고, 단기간 숙소를 마련해 주거나 숙소가 부족할 경우 거처를 제공하는 자들에게 대가를 지불하면서까지 돌보았다. 또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캘빈의 브루스 프랑세즈가 설립되고 시행될 수 있었던 것은 본질적으로 그의 개혁주의적 신학에서 비롯되었다. 이것은 사회복지를 등한시하는 많은 한국 교회들에게 개혁주의적 신학이 요청하는 목회 철학이 무엇인지 말해준다. 개혁주의 신학은 사실 교회의 대사회 봉사를 강조한다. 캘빈은 오늘날의 기독교를 가능하게 한, 개혁주의 신앙인의 살아있는 모델이었다. 캘빈은 교회의 직분자들이 서로 그리스도를 온전한 분량으로 닮아가도록 돕는, 어느 한 직분자도 작게 여겨지거나 소외될 수 없는 상호 조력자라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캘빈에게 있어 직분자들이 행해야 할 중요한 두 가지 직임은 말씀을 전하고, 연약한 자를 돌보는 일이었다. 이러한 캘빈 자신의 신학적 이해는 그가 세운 브루스 프랑세즈에서 구체화되었던 것이다. 브루스 프랑세즈는 캘빈 스스로 말씀을 전하는데 그치지 않고 연약한 지체를 실제적으로 돕는 기관이었다. 자신의 말씀을 듣는 자들이 또한 그 일에 참여하도록 독려하므로 더 많은 사람들이 참된 신앙에 접근하도록 도운 개혁주의 신앙의 모범적 실천의 장이었다.
여기서 캘빈이 설립한 브루스 프랑세즈의 ‘조직성’과 ‘전문성’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복지사업이나 사회봉사가 지역사회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지속적인 발전을 하려면 교회 안의 사람들 중에서 전문인들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외국의 사례들을 보면 성공적인 복지사업 기관들은 일반기업들처럼 헌신된 전문인들로 구성된 탄탄한 조직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사업 이전 단계에서 치밀한 시장조사(지역 내의 욕구와 주민들의 바람, 교회의 인적․물적 자원 대비 효율성, 사업의 장․단점 등)를 깊이 실시한 이후에 사업을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그 분야에 익숙하면서 헌신된 인력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지역의 필요를 채우는 기독교 이상과 같은 초대 교회와 개혁주의 사회봉사 정신에 따라 한국 교회는 다양한 형태로 기독교 사회복지사업과 봉사를 실천해 왔다. 역사적으로 보면, 우리나라 근대 사회복지사업의 발전이 개항과 함께 선교사와 기독교계의 참여로 주로 전개되어 오기는 했으나, 초기에는 주로 개교회 중심이었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비로소 정부의 법에 따른 조직화 작업을 진행하여 단순 시혜 중심에서 벗어나 자립 의지를 북돋우며,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는 쪽으로 사업의 초점이 모아졌다고 볼 수 있다.
~~~계속
-손병덕(총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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