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요 9:3) -
거리에 가로수들이 겨울 맞을 준비를 위해 떨어뜨린 나뭇잎들이 떨어져 발아래 뒹그른다. 머지않아 추운 겨울이 올 것이라고 알려주는 듯 바람에 낙엽들이 흩어지는 소리만이 귓가에 들려온다. 시간은 참으로 빠르게 내겸을 흘러가 주었지만, 11년전 내가 실명할때의 아픔은 지금도 생생하다. 11년전 꿈많던 대학 1학년때, 캠퍼스의 봄향기는 젊었던 우리의 가슴에 희망을 갖게했다.
그러나 내 자신은 다시는 기억하기 싫은 어두운 그림자가 나를 찾아오고 있음을 알지못했다. 아침 마다 배달되었던 신문을 읽곤 하였는데 날이 갈수록 신문 활자가 잘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원인도 알 수 없는 가운데 시력은 점점 떨어지고 나는 안경을 맞추어 쓰면 된다는 극히 상식적인 생각만 하고 있었다. 아버님의 소개로 위생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다. 나의 눈을 진찰한 의사는 뜻밖에 시역을 잃을줄도 모른다는 말과 함께 망막출혈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수개월 동안 소염제를 먹었지만 망막 주위에 있는 피가 잘 흡수되지 않았다. 안과 전문의는 ㅅ 대 부속병원에 가서 칠료을 받도록 진료의뢰서를 발급해주었다. 의사의 진단이 오진이길 빌고 또 빌면서 안과 전문의의 진찰을 받아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망막 분야에 최고 권위자인 ㅇ 박사에게 수술을 받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나는 이동식 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들어갔었고 반신마취를 하고 의식이 희미해지자 수술이 시작되었다.
ㅇ 박사가 수술을 하고 있었는데“ 아 야단났다”고 말하는 소리를 흐릿하게 들었다. 나중에 알게 덴 사실이지만 ㅇ 박사가 망막수술을 하던 중 모세혈관을 건드려 망막에 피가 흐르게 되자 수술을 중단했다는 것이다.
수술에 대한 기대는 무너지고 말았다. 빛은 더 이상 내 곁에 머물러 주려 하지 않았다. 퇴원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차창 밖으로 뿌옇게 보이는 옷 벗은 가로수, 바람 곁에 흩날리는 낙엽들, 화려한 상점들 재미있게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나의 두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는 모습들이기에 나는 가슴이 저려왔다. 그 모습들은 요즘 거리의 풍경과 같을 것이다. 내가 나의 눈으로 본 마지막 모습들이기에 더욱 기억에 남는다. 그 뒤로 나는 완전히 시력을 잃었다.
그 때의 그 절망감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꿈 많은 대학 1년 하필이면 내가 왜? 왜? 이렇게 엄청난 시연을 겪어야 할까? 온통 어둠뿐인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되나? 나는 실명을 완전히 잊기 위해 날마다 잠을 청했다. 깨어도 어둠만이 내곁에 머물러 있을 뿐이었다. 더욱이 그때는 장애인의 생활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했고 시력을 잃은 상태에서 어떻게 생활해야 되는지 알 수 없는 불투명한 나의 미래를 생각하면 내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실명을 하면 남은여생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체 살아가야만 하는지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집에 살고 있던 ㅅ 교회 조집사님의 권유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고, 신앙을 갖게 되었다. 마침 내가 살고 있던 집 근처에 안요한 목사님이 살고 있었고 ㅈ 집사님의 소개로 안요한 목사님이 나의 집에 방문한 것이었다. 안 목사님은 나에게 자신이 실명하고 나서 하나님을 만난 것과 실명후의 삶에 대해 말을 해주었던 것이었다. 그때부터 나의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다. 실명을 했다고 해서 어두운 방에 웅크리고 않아 삶을 포기하기에는 내 자신이 너무 젊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명은 끝이 아니라 이전에 미쳐 알지 못했던 세계를 알게 해주었다. 다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지인의 소개로 시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점자와 흰 지팡이 사용법을 배우기 위해 잠실에 있는 세계연합선교회에 갔었다. 처음 배우는 점자는 너무나 어려웠다. 손끝으로 아무리 글씨를 읽으려고 해도 읽혀지지 않고 손끝만이 저려왔다. 또 흰 지팡이를 잡고 거리를 걷는 연습을 하면서 넘어지기도 하고 부딪치기도 하는 내모습을 바라보는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더듬거리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 젊은 내 자존심은 많이 상하기도 했다.
점자와 흰 지팡이 사용법을 포기한다는 것은, 내 삶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모든 어려움을 무릅쓰고 열심히 배웠다. 비록 내 자신이 원해서 실명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작으나마,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생각에 휴학하고 있던 대학에 복학 할 준비를 했다.(1993년 10월 국민당 주체 장애인수기공모 당선작) ~~~계속
- 전명훈 목사(에벤엘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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