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요 9:3) -
신학대학원 재학 중 실명 후 출석했던 새빛맹인 교회에서 전도사로 사역을 했다. 그 교회는 안요한 목사님을 비롯해서 신도의 대부분이 시각장애인이었다. 교회에서 같이 예배도 드리고 시각장애 학생들의 학습지도나 생활문제 진로 문제들에 대해 상담도해 주었다. 또한 나처럼 일반인으로 살다가 불의의 사고나 질병으로 중도에 실명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그들이 절망을 딛고 일어나서 재활 할 수 있도록 점자를 가르쳤다.
중도에 실명한 사람들 중에는 학생, 사무원, 요리사, 드럼어, 공무원, 파이로트, 교사, 주부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다. 실명한 어떤 사람도 자신이 실명 할 것이라 생각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체로 장애에 직면하면 처음에는 장애로 좌절를 겪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육체적 고통보다 정신적 고통에 더 괴로워한다. 그러나 그들이 신앙생활과 재활교육을 통해 하루, 하루 마음의 안정을 찾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내 자신의 일같이 기뻤다. 또 이런 일을 하게 된 것에 많은 보람을 느꼈다.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본격적인 전도사 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중 1991년 가을 나는 내 생의 커다란 전환점이 될 결혼을 생각하게 되었다. 선교회 활동을 통하여 알게 된 지금의 아내와 만나면서 결혼을 약속했다. 하지만 아내는 일반인이었고 나는 장애인이었다. 그것도 장애 중에 가장 심하다는 시각장애인이었다. 아내 쪽 식구들의 반대는 생각한 대로였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부족으로 장애가 있는 나에게는 두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아내의 부모님은 우리 두 사람을 만나지도 못하게 하고 전화도, 바꿔주지 않았다. 아내는 식구들의 반대에 굴하지 않고 오직 사랑 하나만으로 견뎌주었다. 장애를 가진 내 자신이 초라해져 결혼을 포기할까봐 나를 위로해 주었다. 아내가 너무나 고마웠다.
사랑하나만으로 아내 쪽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1992년 12월 14일에 결혼식을 올렸다. 시각장애인과 일반인과의 결혼, 아내 쪽 부모님이나 주위 분들의 염려와는 달리 우리 두 사람은 열심히 살아가기로 약속했다. 내 자신은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내의 손을 빌리지 않고도 가능하기에 여느 부부 못지않게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청소도 같이하고, 빨래도 같이하고 무엇이든지 같이 행동하며 아내를 많이 도와주었다. 시장에도 같이 가서 물건을 사면 열심히 살라고 격려해주시면서 물건을 더 많이 주시곤 했다. 올 가을에는 우리의 사랑의 열매인 예쁜 딸도 태어났다. 내 자신에게 주어진 장애를 극복하고 열심히 살아온 요즘은 하루, 하루 기쁨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내 자신이 11년 전 실명을 하고 그대로 나의 삶을 포기했더라면 지금의 내 모습은 없었을 것이다.
장애인으로 살아온 11년을 뒤돌아보면서 느꼈던 몇 가지를 적어보자 한다. 장애인이 되어 11년 동안 살아오면서 많은 어려움을 경험하고, 느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어렵고 힘들었던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느꼈던 정신적 고통 때문에 마음이 아팠던 기억들이다. 장애인을 같은 인격체로 보지 않고, 무능력자로 평가해 버리고 마는 선입견 때문에 마음 상할 때가 많았다. 발달된 현대사회는 선천성 장애인 보다 산업재해와 교통사고, 질병 등으로 이 시간에도 몇 명의 장애인이 더 생길 줄 모르는 현실이다.
그러기에 국가는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투자를 먼저 해주었으면 한다. 지금의 현실로는 투자의 부족으로 장애인들이 생활하기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 내 자신도 도로상태가 좋지 않기에 보행할 때 어려움이 많다. 선진국의 발달된 장애인시설과 투자를 보면 부럽기까지 하다. 그 다음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장애인 스스로가 장애를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교육의 기회를 동등하게 부여 해 주어야 할 것이다. 실명한 뒤 학업을 계속하기에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지 모른다.
장애인 교육교재의 부족과 제한된 학업 환경에서 배움의 욕구를 모두 채우기에는 부족하였다. 국가는 정책적으로 장애인의 교육 프로그램 지원을 위한 재원의 확충을 해야만 할 것이다. 그 교육을 통하여 얻은 지식이나 기술을 발휘 할 수 있는 취업의 기회를 확대 시켜주어야 한다. 장애인에게 취업의 기회를 주기보다는 일을 못할 것이라는 선입견으로 무능력자로 취급하기 때문에 많은 장애인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통령 선거 때이면 각 당의 후보들은 유권자를 위한 많은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그 중에서도 장애인문제에 관심을 가져주는 정치지도자들이 있어서 무척이나 고맙고 반가웠다. 장애인 예산배정확대, 취업기회확대 시험응시 시 불이익철폐 등 이 모든 공약이 대통령 선거에 당선되기 위한 공약의 남발중 하나가 아닌 진정으로 힘없고 소외된 장애인들에게 희망의 빛, 삶의 새 빛을 주는 정책을 이행했으면 좋겠다.
이 땅의 많은 장애인들이 오늘도 여러 가지 역경을 딛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음을 기억하고 정치 지도자들은 장애인들의 얼굴에 밝은 웃음이 떠나지 않도록 진정으로 살기 좋은 복지국가 건설에 힘써 서 이 땅위에 많은 장애인들의 삶에 새 빛을 비쳐줄 수 있는 좋은 정책이 실현되기를 바란다.(1993년 10월 국민당 주체 장애인수기공모 당선작)
- 전명훈 목사(에벤엘 대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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