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 (고전 10:13) -
재활상담을 하다보면 시각장애의 원인은 다르지만 내담자들은 실명으로 큰 좌절을 겪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각은 한번 손상을 당하면 다시 회복되기 어렵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심리적인 상담이 절실히 요구되는 것입니다. 처음 상담에 참여하는 내담자는 의기소침해있지만 상담이 계속되면 될 수록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은 아마도 상담에 참여하고 있는 상담자 역시 중도에 시각장애를 겪었기 때문에 내담자도 닫힌 마음을 여는 것 같습니다. 상담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감을 같이하는 것이며, 상담자가 내담자의 말에 마음을 열어 귀 기울이는 것입니다.
내담자 안영일 형제를 만나 상담을 한지도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상담을 하다보면 항상 안 형제의 어머니도 만나게 되는데 문득 그의 어머니는 어떤 심정일까? 나 역시 대학 1학년 때 실명으로 나의 어머니도 큰 충격에 빠져 하루하루를 마음 졸이면서 살아가셨는데 아마도 안영일 형제의 어머니의 심정도 나의 어머니의 심정과 같지 않을까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안형제는 대학에서 조리학과 졸업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뇌경색으로 실명을 하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해 잔병치레를 하였으며 뇌경색으로 두 번이나 뇌수술을 받았고 세 번째는 수술을 받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마른하늘의 날벼락! 안영일 형제의 어느 아침이 꼭 그랬습니다. 전날 저녁 친구들을 만나고 들어와 주일 예배를 드리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 안 형제는 다음날 아침 “일어나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깜깜한데 벌써 일어 나냐”며 누워 있다가 “8시가 다 됐다”는 말씀에 놀라 몸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새벽이나 비온 날 같이 사방이 캄캄하고 어두워서 화장실을 찾아가려는 데도 앞이 안보이고 엉뚱한 곳에서 헤매자 뒤에서 보고 있던 어머니가 그 자리에서 119를 부르고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병원에서도 안영일 형제는 컴컴한 병실을 보면서 전기절약을 하는가보다 할 정도로 무심하게 여겼었는데, 천만뜻밖에도 그길로 시력을 잃고 다시는 빛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갑작스런 장애는 영일형제를 짜증만 내는 청년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사지는 자유로운데 앞이 안 보이고 자기 방식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절망감에 사방에서 물건과 부딪히게 되자 불안감까지 더해졌습니다. 안 형제는 두문불출하며 집 안에서 물건을 파손하기도 하고 투정도 부리며 어머니와 한동안 힘겨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때는 복지관이라는 데가 장애인들만 가는 덴 줄 알았어요. 내가 장애를 갖게 됐다는 사실도 못 받아들여서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는 실명으로 친구 관계의 단절, 가족으로부터의 소외로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고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져 갔습니다. 그로 인해 우울과 불안, 죄책감과 자존감 상실을 겪게 되었으며, 삶의 의미를 상실했던 것은 시각장애의 길이 너무 험난한 길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던 안 형제가 변하게 된 계기는 바깥으로의 외출이었습니다. 어머니도 ‘처음엔 어떻게 데리고 나가나, 주변에서 앞 못 본다고 수군거리면 어떻게 하나...’ 같은 두려움 때문에 아들과 집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동사무소 출입부터 시작해서 다음엔 복지관, 그리고 중도실명 재활상담카페까지... 외출 반경이 넓어지면서 덩달아 영일씨의 마음도 넓어지고 있습니다.
그는 집에 있는 것이 답답해 상담이 있는 날이면 엄마의 안내를 받아 한 시간 일찍 도착하곤 했습니다. 상담카페에 나오면서 영일씨는 “모임 자체가 너무 즐거워요. 말할 수 있는 상대가 있고,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고... 모임을 알리는 목사님 전화가 기다려져요.”라며 활짝 웃습니다. 안 형제는 차분한 성격이었으며 상담자의 말에 귀를 잘 기울이편이었습니다. 그는 기초재활교육을 받았는데도 엄마에게 의존하여 외출을 하곤 하였습니다. 상담을 하면서 안영일 형제의 어머님께 아드님이 자립을 하려면 최소한 집에서 가까운 지하철역까지는 도움 없이 독립 보행을 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먼 발취에서 지켜보며 도움이 꼭 필요할 때 도움을 주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물론 엄마의 입장에서 보면 앞을 볼 수 없는 아들이 보행을 하다가 다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혼자서 보행을 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마음 졸이는 일이지만 앞으로 영일형제가 시각장애인으로 당당히 살아가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만났을 때는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보행을 하면서 장애물에 부딪쳐 힘들어 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독립보행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시각장애인에게 혼자서 보행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독립보행이란 재활의 첫 걸음이기 때문입니다. 상담에서 보람이 있다면 내담자가 점진적으로 심리와 행동이 긍정적으로 바뀔 때입니다. 안영일 형제는 지금은 어느 정도 자신감이 들었는지 내년에 맹학교 이료재활과정을 입학한다고 합니다.
맹학교를 졸업하면 취업을 해야 하는 어려운 과정이 남아있지만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묵묵히 장애를 이겨낸다면 그의 앞길에 밝은 빛이 비쳐질 것입니다.
- 전명훈 목사(에벤엘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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